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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시는 괴로워 - 조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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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시는 괴로워 - 조각

플라주(FLAGE) 2016. 5. 23. 23:25

방학이라 살 좀 보태서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은 침대에서 떨어지질 않던 종인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찜질 중이던 자신의 형 준면은 툭툭 쳤다. 준면은 목소리로만 반응했다. 왜. 뭐. 준면도 침대를 좋아했지만, 종인의 방이 더 난방에 뜨끈뜨끈 하기 때문에 잠시 놀러(?)온 것 뿐이었다.


  “세훈이는 뭐해?”
  “우리처럼 이불 밖으로 안 나와. 왜?”
  “놀러오라고 말하면 안돼? 심심한데.”
  “경수 불러.”
  “이불 밖은 위험한데 경수 형 오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


얘 지금 진지한 거지? 나랑 장난치려는 거 아니지? 세훈이는 오다가 안 미끄러져…? 준면은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바닥에 찜질하고 있으니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것조차 귀찮다. 
그렇다. 준면과 종인은 김형제로, 모두 애인이 있다. 본인들이 갈까 말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쪽으로 부를까 말까 고민하는 그 상대들이 애인이 맞다. 비록 둘 다 서로의 애인은 차마 이불 밖으로 불러낼 수 없다고 하고 있지만 말이다.


  “형. 그러면 우리가 밥 산다고 하고 경수 형이랑 세훈이 둘 다 부르자.”
  “네가 사.”
  “…형 어제 월급 들어온 거 다 알아.”
  “넌 용돈 받았잖아.”
  “…….”
  “…….”


먹고 자느라 퉁퉁 부은 눈들로 두 형제는 서로를 빤히 바라봤다. 제 3자가 본다면 과거 연애 프로그램들에서처럼 눈빛 교환이라도 하는 것으로 오해 가능할 법한 모습이다. 성인이 됐으면 용돈은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걸 알기야 알지만, 나 용돈 많이 안 받는데……. 종인은 제 형을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침대에 바로 누웠다. 


  “야. 김종인.”
  “뭐. 왜.”
  “경수도 난시였지?”
  “응. 세훈이도 난시일 걸?”
  “…너 심심하지?”
  “……왜.”


종인은 불안했다. 준면은 평소에 똑똑할 때가 많지만, 장난기가 도져서 이상할 땐 한없이 이상한 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심심한 건 심심한 거니 일단 들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놀러올 거니까 둘 다 안경 안 쓰고 올 거 아냐.”
  “아마?”
  “둘한테 심부름 시키자.”
  “……?”
  “웃기겠다.”
  “……?”


뭔 헛소리야……?



***





경수는 황당함에 미간을 좁혔고 세훈은 계속 항변했다. 아니, 오는 길에 사오라고 해도 됐던 거잖아여! 도착하자마자 우리 둘 심부름 보내는 게 뭐예여! 날씨도 추운데! 돈이야 나중에 줘도 되는 거잖아여! 아무리 형이어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져!


  “…그래서 안 사올 거야?”
  “…….”


세훈은 경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숨을 쉬는 걸 보니 경수는 이미 체념을 한 듯 보였다. 준면이 형 똥고집이라 못 말려. 그냥 가. 그냥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훈도 한숨을 쉬었다. 카드 주세여. 막 사고 올 거예여.


  “난 빅맥.”
  “난 쿼터.”


누워서 파워 당당하게 주문을 하는 김형제를 보며 경수랑 세훈은 들어온 모습 그대로 다시 나갔다. 맥도날드가 가까운 게 그나마 다행이네 라는 생각을 했다.



***





알바생 K양은 지루하면서 행복했다. 손님이 없을 땐 한없이 없을 시간대라 할 일이 없어 지루하면서도 최저시급 받고 일하는데 미친듯이 바쁘고 미친듯이 진상 손님을 만나지 않아도 돼서 행복했다. 카운터 앞에 서서 발장난이나 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맥도날드입니다! 주문은 이쪽에서 도와드릴게요!”
  “아, 예… 잠시만요.”
  “천천히 고르세요~”


손님과 이뤄지는 로맨스따위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잘생긴 손님이 오면 기분이 좋은 건 본능이다. K양은 미소를 띠며 잘생긴 남정네 둘에게 더욱 착하게 말을 했다. 차분히 기다려야지, 차분히. 1층에서 먹고 가시려나. 허헝.


  “…형은 안 보여, 세훈아.”
  “…저도여.”
  “아, 진짜.”
  “…이러려고 보낸 거 같져?”


경수와 세훈은 메뉴판 글씨가 도저히 보이질 않았다. 알바생에게 작은 메뉴판을 보여달라고 하면 되는데 별로 오지도 않는 패스트푸드점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리 만무했다. 그저 턱을 당기고 천장에 달린 메뉴판을 화난 듯이 노려볼 뿐이었다. 그림도 흐릿하게 보이니 머릿속도 흐릿해지는 기분이랄까. 종인이 빅맥인 건 알겠는데, 준면이 뭘 시켰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다.

K양은 흠칫했다. 뭐야, 뭔데… 메뉴판에 뭐 있어…? 서비스 정신을 투철해서 화나 보이는 잘생긴 손님 둘이 무안해 하지 않도록 메뉴판을 흘끗 뒤돌아 봤지만, 멀쩡하기만 했다. …나한테 화났어…? 나 뭐 잘못했지…? 메뉴얼대로 인사만 했는데…? …내가 못 생겨서 그래…? 뭐야, 뭔데…… 엄마, 나 무서워…… 왜 이럴 땐 매니저 님도 없고 난리야…? 남자 둘이 카운터에 더 다가와서 째려보니 더더욱 무섭기만 했다. 심지어 한숨까지 쉰다.


  “저기…”
  “네? 네네. 주문, 하시겠어요?”
  “……그냥 빅맥 세트 4개 주세요…….”
  “네 개 다 콜라 괜찮으세요?”
  “네 개 다 사이다여!”


김형제 짜증나. 빅맥이나 쳐먹어. 

한편, K양은 얼른 버거가 나오기만을 덜덜 떨며 기다렸다. 이런 시급…



***





준면은 맥도날드 대형 종이백 안에서 햄버거 4개가 들어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종이 봉투를 꺼냈다. 열었다. 꺼냈다, 햄버거를. 뭐야. 왜 빅맥만 4개야.


  “세훈아, 쿼터는?”
  “아. 맞다. 쿼터였져.”
  “…….”
  “메뉴판 글씨가 보였으면 생각났을 텐데, 안 보이는 걸 어떡해여.”
  “…….”
  “원래 대표 메뉴가 제일 맛있는 거랬어여, 저희 엄마가. 형 그냥 먹어여.”


잘못 사오는 거 보고 싶어서 시킨 심부름이긴 했지만, 막상 원하는 걸 못 먹는다 생각하니 준면은 좀, 그랬다. 의문의 1패 기분. 좀 잉잉거리고 싶기까지 하다. 


  “형도 안 보였죠? 내가 그러지 말자고 했는,”
  “너 알고 보냈어?”
  “…네?”
  “…….”
  “…….”
  “꿇어.”
  “네.”


종인은 사이다를 마시려다 말고 무릎 꿇고 두 손을 올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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