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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nsor(스폰서) 03

플라주(FLAGE) 2016. 5. 24. 12:43

아직 벤이 없는 경수는 매니저 승환의 차 조수석에 앉아있었고, 차는 CS전자 본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경수는 오전에 사장 준면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내가 비서를 미리 따로 만나서 얘기를 나눴어. 데뷔 전에 CS전자 신형 휴대폰 광고부터 퍼뜨릴 거야. 거기에 네가 나올 거고. 광고는 자켓 촬영 후에 진행 예정인데, 컨셉 등은 아직 CS쪽에서 회의 중이라 나도 몰라. 신경 쓴 제품이라 광고를 엄청 할 예정이라서 우린 노개런티로 찍기로 했어. 이거 되게 좋은 기회인 거 같지? 맞아. 그러니까 오늘 가서 인사 잘하고 와.」


  "으으."
  "왜? 멀미 나?"
  "혀엉. 나 안 가면 안 되겠죠?"


'사장님 화 나면 무섭다.' 승환의 한 마디에 경수는 쭈그러졌다. 대화도 잘 안 나눠본 사이에 혼나는 건 싫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뻘일 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게 낫지도 않았다. 고민이 많아보이는 경수의 모습에 승환은 물음표를 띄웠다. CS사장이면 경수보다 두 살 어리던데… 자신보다 어린 사장에게 존댓말하는 게 싫어서 그런가? 준면에게서 찬열의 말을 다 들은 승환은 알지 못했다. 준면이 그 말들을 경수에게 해주지 않았고, 경수가 검색창에 종인을 검색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창 밖으로 본사가 보이자 경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승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나, 안 가면 안돼요?"
  "…어. 저기 비서님 온다. 빨랑 내려."
  "…내 편 아무도 없어!"


일부러 쾅 닫은 문에서 승환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 했다. '야!! 이거 할부 엄청 남았댔지!!' 승환이 그러든지 말든지 경수는 족히 190cm는 되어보이는 남자로 인해 잔뜩 쫄아있었다.

우, 우, 울고 싶다…….



@





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가수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종인은 소파에 앉아 일을 다 마치고 침대로 가려다가 멈추었다.


  "내가 잘 못 들었어."
  "지금 가수 디오 씨가 여기로 오시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왜?"
  "제가 스폰서 제의를 받아들였으니까요."
  "……."


종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다이아몬드 만년필을 찬열의 이마를 향해 던졌다. 전형적인 화이트 칼라(white collar: 사무직을 일컬음)답게 거지 같은 운동 신경으로 찬열은 만년필을 겨우 막았다. 이거에 찍히면 무조건 피 본다.


  "서포트가 다 그런 의미는 아니죠! 사장님은 좋은 의미로 서포트하시면 된다니까요?"
  "장난해요?"
  "아니요. 말해뒀어요, 제가. 도경수 씨는 사장님 말벗 역할만 하면 된다고! 사장님은 그저 재능이 아까운 사람을 응원해 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설마 섹스라도 하시려… 으억!"
  "퇴직금 없이 해고 당해볼래요, 형?"


날아오는 휴지곽을 잡았더니 이젠 존댓말과 형 호칭 함께 쓰기야? 이노무 시키 진짜 화났나? 어쩔 수 없군. 최후의 방편을 써야겠어.

찬열은 비장하게 종인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종인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찬열을 쏘아보고만 있다가 표정이 갑자기 풀렸다. '뭐 해준다고?'


  "서포트 관두실 때까지 사장님께서 원하실 때마다 군말 없이 치킨 사다드리죠."
  "맛은."
  "아무거나 가능."
  "콜."


예헷! 찬열은 웃으며 만년필과 휴지곽을 원래 위치에 놓았다. 보모 일은 이제 끝이구나! 종인의 비서가 된 이후 처음 느끼는 해방감이었다. 그 기분을 가득 담아 종인에게 디오 씨를 마중나가겠다고 하며 찬열이 문을 나설 때였다. 종인이 평소 목소리로 찬열을 불러세웠고, 찬열은 뒤를 돌아보자마자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야만 했다.


  "진짜 아프거든!! 엄마야, 피 나!!"


바닥엔 형광등 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만년필이 떨어져 있었다.



@





  "가수 디오, 도경수 씨 맞으신가요?"
  "네……."


이렇게 키 큰 남자가 청하는 악수는 뭔가 무서웠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는 건가? 경수는 어색하게 악수에 답하였다. 그에 찬열은 비서용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지만, 경수는 또다시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찬열은 그 모습을 이해하며(어서 와. 이런 사장은 처음일 걸?) 사장실로 이동하는 동안 경수에게 주의 사항을 말해주었다.


  "지금 올라가시면 사장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실 거예요. 편하신 곳 아무 데나 앉으셔서 그냥 계셔주시면 돼요. 물론 무음으로 휴대폰 게임을 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실 테지만 큰 소리는 되도록 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잠을 자요?"
  "음. 사장실 들어가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아, 제일 중요한 게 있어요."
  "뭐, 뭔데요?"
  "게임 같이 하자고 하실 때 절대! 이기시면 안돼요. 절대로!"


찬열이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현재 경수는 그 주의 사항들로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뻘 배불뚝이 사장이 회사에서 자고 게임하고……? 이 회사 돈 주고 7위한 거야?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수록 경수의 CS전자에 대한 의심은 점점 부풀어져만 갔다.

'24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 멘트가 나오고 문이 열리자 찬열은 다시 입을 열었다.


  "주무실 땐 그냥 가만히 옆에 계셔주시고, 게임은 무조건 져주시고. 아셨죠?"
  "네…"
  "무서운 분 아니시니까 너무 기죽어 있지 마세요. 참, 소속사로 돌아가시기 전에 저랑 한 번 더 뵈도록 할게요. 세세한 안내사항들 입력해서 뽑아드리겠습니다. 저 문입니다. 주무실 테니 노크 없이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퍽도 안 무서운 분이겠다. 경수는 속으로만 꿍얼거리고 조심스럽게 사장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장실은 정말… 한 마디로 '남자 방' 같았다. 소속사 사장실 같이 office 구조가 아닌 진짜 '방' 구조. 한쪽 책장에 꽂혀있는 만화책들과, 정말 편안해 보이는 소파와 TV와 그 사이 탁상 위에 널부러져 있는 게임기, 그리고 뼈만 남은 치킨들. 제일 쇼킹한 건 보통의 사무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침대와 그 위에 이불을 돌돌 만 채로 잠들어 있는 '가만(까맣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하얗지도 않아서)' 남자 애.

응? 잠시만. 애라니? 경수는 침대 옆으로 가서 잠든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 최강 동안? 고개를 돌려 책상 위 팻말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곤 검색창에 'CS전자 김종인'을 쳐보았다.


  "헉. 나보다 두 살 어려."


기사 제목들은 거의 다 우호적이었다, 이 어리고 가만 사장에게. 본인이 굉장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경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도로 넣고 자신이 앉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책상쪽 의자는 개인 사무 공간일 테니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소파는… 게임기와 게임팩들 때문에 난장판이었다. 우물쭈물 대던 경수는 결국 침대에 엉덩이만 살짝 걸쳐 앉았다.


  "……."


안 답답한가… 애벌레 마냥 이불에 싸인 종인은 미동도 하지 않고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지만, 조용한 사무실 공간에 수면자의 규칙적인 호흡 소리기 울리자 경수는 가만히 앉아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종인을 설득하고 경수를 마중나가느라 찬열은 서류 분류가 밀려버리는 바람에 사장실 밖 비서 공간에서 말없이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안팎이 모두 조용하여 경수는 가만히 있다가 졸았고, 몸이 옆으로 기우뚱하자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놀래라…….


  "한 시간 반이나 지났네,"


종인은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자고 있었다. 시간도 꽤 지났고 자신이 딱히 할 일이 없어 경수는 사장실에서 나왔다. 찬열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계속 서류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말 걸어도 되겠지? 경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저기…"
  "아. 나오셨네요? 무슨 일 생기신 건가요?"
  "아뇨. 계속 주무시기만 하셔서요."
  "한 번 잠 드시면 잘 안 일어나는 편이세요. 제가 매니저분께 연락 넣을테니 여기 계시다가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 종이 읽어주시겠습니까?"
  "아… 네. 그럴게요."


<유의 사항
  1. 게임을 함께 할 때 이기지 말 것
  2. 사장이 잘 땐 그냥 옆에만 있어줄 것(이때 무엇을 하든 제약 무)
  3. 만화책을 볼 땐 건드리지 말 것.
  4. 부정한 것(청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 것
  5. 커피는 스스로 타먹을 것(사장이 커피 심부름을 혐오함)
  6. 말수가 적고 간혹 다소 건방지거나 깐죽거리는 어투가 들려도 신경쓰지 말 것(악의가 없음)

*계약 자체의 내용은 엑스오 컴퍼니 사장 측에 전달 완료(CF 세부 사항은 추후 연락 예정)
*회사 출입 시 지하 주차장(F1~F5)과 가운데 엘리베이터(사장실 직원 전용)를 이용하여 곧장 24층으로 오길 바람
*이하 미기재 사항은 추후 알림>


  "……."


회사에서 만화책까지……. 들어가보면 알 거라는 찬열의 말이 경수는 이해가 되었다. 방 같은 사무실 안이 종인의 일상을 정말 다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6번은 뭐지? 비서님이 당한 사항인가? 찬열을 흘끔 보고 경수는 집에 가서 종인에 대한 걸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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