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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Sponsor(스폰서) 04

플라주(FLAGE) 2016. 5. 24. 12:44

  "경수 씨 오셨어요? 전에 알려드린대로 오셨나요?"
  "네… 차는 지하 3층에 댔고 가운데 엘리베이터요."
  "잘 하셨네요! 오늘은 사장님 깨어있으실 겁니다. 얘기 잘 나눠보세요."
  "아, 네."


사장실 문고리를 잡은 자신을 보고 싱긋 웃어주는 찬열에게서 경수는 유치원 선생님을 떠올렸다. 나 지금 유치원생으로서 조련 당하고 있는 건가? 경수는 입술을 씰룩이고 사장실에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


대답을 않는 종인에 경수는 민망하게 웃다가 쭈뼛거리며 소파 구석에 앉았다. 물론 종인이 있는 책상과 가장 먼 곳에. 저번과 달리 종인은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찬열에게 받아냈을 치킨도 책상에 놓여있었다. 눈을 마주쳐 놓고도 인사를 안 받아줄거면 왜 서포트해주겠다고 한 거지. 경수가 멍하니 생각을 하는 도중에 종인이 경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에 경수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종인을 쳐다보았다. '왜, 왜요?'


  "이거."


게임기였다. 경수는 '게임, 같이요?'라고 물었고 종인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할 것도 없던 경수가 하겠단 의미로 끄덕이자 종인은 TV 밑 서랍에서 게임팩을 뒤적거렸다. 종인과 뭘 하는 게 처음이라 경수는 괜히 긴장되어 허리를 곧게 세웠다. 아! 비서님이 져주라고 했었지! 곧 종인은 게임을 실행시키고 경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경수는 오로지 화면만 보며 결심했다. 꼭 져야겠다고.



@




찬열은 신형 휴대폰 광고 기획 회의에서 모델을 경수로 쓰자는 의견을 말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원래는 종인이 참석하여 기획안을 통과시켜야 하지만, 두 번의 참석 이후 종인은 그 권한을 찬열에게 위임하였다. 자신은 아무리 봐도 광고 쪽은 도저히 모르겠으니 차라리 그쪽을 복수 전공했던 찬열이 하는 게 낫겠다면서 맡겨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찬열이 꽤 잘해내고 있어서 광고 기획팀에서도 딱히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럼 최종적으로 컨셉 키워드는 일상, 유럽 여행, 안락함으로 잡겠습니다. 그럼 이제 모델을 정해야 하는데, 저희 팀은 일반 대학생을 선정하자는 의견입니다."
  "아직 모집하지 않으셨따면 제가 추천해도 될까요?"
  "비서님께서요? 혹시 프로필 있으신가요?"
  "네. 화면을 봐주시겠습니까?"


찬열은 이전에 준면에게 부탁하여 받은 경수의 자켓 촬영 B컷들과 간단한 프로필을 적은 PPT를 화면에 띄웠다. 발라드 가수이고 B컷들이라 메이크업이 진하지 않아, 사진 속 경수는 좀 꾸밀 줄 아는 대학생처럼 보이기만 했다. 이정도면 이번 컨셉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설득이 예상보다 쉬울 것 같았다. 알게 된 경로만 좀 속이면 되겠지. 찬열은 화면 옆으로 가 엘리트 비서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희 누나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데뷔 준비 중인 가수입니다."
  "느낌은 좋은데 연예인을 캐스팅하면 신형 이미지가 깨지지 않을까요?"
  "광고가 데뷔 전에 퍼진다면 첫인상은 문제 없다고 생각됩니다. 데뷔 후에는 모델이 일반인이라 광고가 지루할 수 있다는 점을 커버할 수 있을 거고요. 또한, 모델이 일반인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래도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 휴대폰은 뭔가 있어보인다.'라는 생각을 덜 들게 하지 않을까요? 맞는 이미지 학생을 찾기도 힘들 테고… 이정도면 저희 쪽에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 됩니다만. 다들 어떠신가요?"


안 그래도 이 회의 전부터 광고 기획팀 팀장은 캐스팅에 애를 먹고 있었고, 그 덕분에 밑에 있는 팀원들도 며칠째 외근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만 했다. 광고 기획팀 팀원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오케이를 외쳤다. 드디어 해방이야!!!


  "그럼 이제 일주일 안으로 콘티 작업, 장소 섭외 등 마쳐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일주일이요?"
  "네. 타사에서 선수치기 전에 끝내야 하니까요."
  "……."


또 외근에 야근을……. 홀가분하게 회의실을 나가는 찬열의 뒤로 좀비 같이 허망하게 늘어친 광고 기획팀 팀원들이 보였다.



@




헐.


  "……."
  "……."


경수의 눈은 TV 화면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뇌는 빠른 속도로 회전 중이었다. 그렇다,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게임에 열중하여 종인을 이겨버린 것이다. 평소 백현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는 버릇이 튀어나와 종인과 경수 서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고. 뭔지 모르지만 비서님이 엄청 강조하셨던 건데 나 어떡하지? 흐어엉!

울고 싶은 경수와 달리 종인은 금방 평온함을 되찾고 있었다. 나 게임을 못하는 편인 거구나. 스스로를 인정하다가 문득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이 사람이 왜 이기지?


  "저기."
  "네, 네?!"
  "당신이 왜…"
  "제, 제가요! 이기려고 한 게 아닌데!"
  "……."


지려고 한 사람에게 진 거야, 나? 질문을 하려다 꾹 참았던 종인의 심정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뚱하니 있는 종인의 모습에 경수는 망연자실하였다. 차라리 화를 내요……. 찬열이 왜 이기지 말라고 했는지 경수는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인은 묵묵히 게임기를 정리하고는 침대에 가서 누웠고, 경수는 첫날처럼 쭈뼛거리며 침애데 살짝 걸터앉았다. 이런 경수의 심정을 알 리가 없는 종인은 그대로 계속 뚱하게 경수를 쳐다보다가 경수를 안아서 자신의 옆에 눕혔다.


  "헉. 저, 저, 전…"


나 성추행 당하는 거니?! 경수는 재빠르게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종인은 그저 같은 이불을 덮어주고는 반대편으로 돌아누워 잠을 청할 뿐이었다. 파악이 힘든 상황 덕에 큰 눈은 데룩데룩 굴러졌다. 한편 종인은 선잠이 든 상태에서 생각했다. 왜 자신을 이긴건지 모르지만, 눈 밑 다크서클이 불쌍해 보여서 재워주는 것 뿐이라고. 그러고 곧 깊은 낮잠에 빠졌다.


  "……."


비서님… 왜 져야만 한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




찬열은 오늘의 할 일들 중 가장 중요했던 걸 무사히 마쳐서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 게다가 기타 자잘한 일들은 정시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까지 좋은 상태였다. 내일은 주말이니 저엉말 오랜만에 클럽이나 가볼까? 커플 천국! 솔로 지옥! 복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24층에는 중앙에 이어져 있는 비서실과 사장실, 구석에 있는 보안실 뿐이다) 찬열은 자신만의 리듬을 타며 문을 벌컥 열었다.


  "비서님……"
  "경수 씨? 왜 그렇게 얼굴이 쾡하세요?"
  "그게요… 제가 모르고, 게임할 때 이겨버렸거든요…?"
  "…정말요?"


찬열은 파일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경수의 맞은 편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았다. 몇 번 보지도 않은 상대에게 멘탈 붕괴 어택 '왜 이겨?'를 시전하신 거야, 지금? 한숨을 쉬고 찬열은 계속 말해보라고 경수를 다독였다.


  "그냥 막 빤히 쳐다보시는 거예요… 그냥 화를 내시지…"
  "…네?"
  "그리고 침대에 누우시더니! 갑자기 저도 옆에 눕히시고는 돌아누워 주무시는 거예요……."
  "……."


뭐지, 이건. 삐쳤다가 경수 씨가 피곤해 보이니까 자라고 옆에 눕힌 것만 같은 이 느낌은? 자신이 이겼을 때와 확연하게 다른 종인의 반응 때문에 찬열의 기분은 갑자기 나빠져 버렸다. 그러나 금방 경수를 상기해낸 비서 찬열은 웃으며(영업용) 사장님은 악의가 전혀 없었을 거라고 풀 죽은 경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럴까요…? 전 이만 가볼게요…….' 터덜터덜 비서실을 나서는 경수의 뒤에서 찬열은 이를 갈았다. 기분 나쁘니 오늘 꼭! 클럽을 가야겠어. 아직 자고 있을 종인을 욕하며 찬열은 빛의 속도로 남은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경수는 어떻게 해야 자신보다 두 살 어린 대기업 사장님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치킨이 항상 있던데 사다주면 풀리시려나… 답을 알 수 없는 고민으로 큰 눈에 물이 맺히려 할 때쯤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난 여보가 아니라 네 형님 백,


어디서 개가 짖나. 경수는 냉정하게 통화 종료를 터치하고 귀를 후비적 거렸다. 끊긴 것이 무색하게 벨은 또다시 울렸다.


  "뭐."
  -친구가 통화 좀 하자는데 그렇게 매정하게 끊냐!
  "누가 멍멍 거리길래 난 개인 줄 알았지."
  -…됴륵됴륵 주제에.
  "뭐라고? 됴륵?"
  -아닙니다, 도경수님. 너 오늘 스폰서 만나고나서 아무것도 없지? 없는 거 다 알아. 그러니까 나랑 클럽 가자!
  "너 데뷔한 가수야…"


'거기 연예인들이 많이 가서 보안 좋대! 그리고 기자들도 안 건드린댔어! 나 한 번도 그런 데 안 가봤단 말이야! 가자, 도디오!' 경수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도대체 그런 걸 누가 알려줬냐고 한탄을 하고는 매니저 형의 차를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사장님이 알려줬지롱.
  "……?"
  -김준면 싸장님이 알려줬,


이번엔 쥐가 짖네, 찍찍. 곧바로 휴대폰을 종료시키고 경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형, 얼른 가자.' 결국 치킨도 백현도 경수에게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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