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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Sponsor(스폰서) 08

플라주(FLAGE) 2016. 5. 24. 12:48

지금 백현은 땅에 떨어져 있는 종이 가방을 다시 뒤집어 쓰고 싶었다. 어째서 찬열이 경수의 스폰서와 함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난 게 중요하였다. 게다가 자신은 그때와 다르게 노메이크업 상태, 즉 경수 말을 빌리자면 멍뭉이 상태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때와 지금의 외모 차이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저 백현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찬열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때 백현하고 지금 백현이 동일인물이 맞다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백현의 머리에 축 늘어진 강아지 귀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고양이 느낌이 나던 클럽 때와 달리 지금은 강아지 느낌이 강하다. 종이백을 쓰고 백변훈이라고 속이려던 걸 보면 얌전한 강아지보다는… 사고치는 멍뭉이 느낌? 곰곰이 생각을 하던 찬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완전 귀엽잖아!!! 실제 강아지든, 강아지상이든, 사실 찬열은 강아지 성애자였다.

위 사실을 알 리 없는 백현만 속이 타들어 갈 뿐이다.


  "저기이…"
  "그때는 형이라고 잘 부르더니. 왜?"
  "……."


화난 게 틀림없어! 아까도 치가 떨려서 몸서리친 걸 거야… 백현은 더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화는 무슨. 찬열은 형 소리가 그리웠을 뿐이다. 게이인 자신에게 형이란 호칭은 매우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찬열은 어서 다시 형이라고 부르라는 눈빛을 발사했지만, 백현은 고개도 못 들고 있어서 그 눈빛을 볼 수 없었다. 통신 실패.


  "제가 속이려던 게 아니라요… 그때 같이 있고 싶었는데 연예인은 싫다고 하셔서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클럽에 갔던 거라… 다시는 못 볼 줄 알고오… 아무튼 죄송해요…"
  "그건 하룻밤 상대 조건이고."
  "네?"
  "쭉 만날 사람은 범법자만 아니면 되는데."
  "……?"
  "내가 하룻밤 상대는 고양이상, 애인은 강아지상 취향이거든. 그런데 네가 둘 다 충족해서 신기하다."
  "아… 그러게요…"


눈치가 약간 모자란 것도 그저 귀여웠다. 백현을 머리부터 씹어 먹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넌 어떨지 모르겠는데 난 널 계속 보고싶거든."
  "…어?"
  "나 지금 대쉬하는 건데… 별론가? 아니면 이미 애인이 있다던가?"
  "아, 아니요!"


원래 단순한 걸 선호하는 백현에게 호감 가는 상대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 준면의 눈치는 원래부터 보지 않았고. 고로 찬열과의 연애에 문제될 건 없다는 것이다. 찬열 상상 속의 백현의 강아지 귀는 이제 쫑긋거리고 있었다. 찬열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으며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혀엉."
  "왜?"


형은 웃을 때 짝눈되는 것도 멋있네요!



@




베이지색 니트에 하얀 면바지를 입고 있는 경수는 창문에 기대어 웃기도 하고 홍조를 띤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하였다. 정말로 사랑에 빠진 듯한 경수의 모습을 카메라가 쉼없이 담았다. 처음 몇 컷은 쑥스러워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지는 모습을 종인은 지켜보았다. 종인은 사랑이나 연애 같은 건 책과 TV를 통해서만 알아왔기 때문에 경수의 모습들이 다 신기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경수가 사랑을 해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기."
  "예? 무슨 일이시죠?"
  "좀 있다가 손 촬영 들어가야 하셔서요. 저쪽 화장실에서 손 씻고 와주시겠어요? 손도 따로 메이크업을 받아야 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친척 동생이면 분명 22살보다 적다는 건데 말투가 웬만한 회사원 저리 가라여서 스태프는 의아하였으나 기분 탓이라 여기고 돌아갔다.

종인이 손을 씻으며 찬열은 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찬열이 종인을 부르며 화장실로 들어왔다.


  "매니저분께 들었는데 손 모델 하신다고요?"
  "응. 어떻게 된건지 나도 잘 몰라."
  "손만 찍는 거 확실하죠? 그 이상은 안돼요."
  "컨셉 들어보니까 확실히 손만 찍는 거 맞는 것 같아."


본인이 없는 사이에 뭔 촬영에 참여하신다고 들어서 기함했다고 말하는 찬열에게 종인이 그 사이에 어디서 뭘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찬열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연애 사업이요. 이제 나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손도 화장하신다던데."
  "어어…"


연애 사업? 누구랑? 내가 연예를 잘못 들었나? 아닌데… 건강검진 때마다 청력 정상으로 나오는데……. 골똘히 생각하던 종인은 이내 사고 회로를 멈추었다. 귀찮아.

회사 업무와 혼자 놀기, 개들이랑 놀기 외에 다른 것을 하는 것 자체가 종인에게 이미 피곤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손톱이 다듬어지고 핸드 크림이 발라지는 중에도 집에 가서 얼른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고 있었다.


  "디오 씨 동생 분 대기해 주세요!"


찬열은 이왕 찍는 거 잘 찍으시라고 하며 종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뒤쪽에 서있던 백현에게 갔다. 종이 가방을 뒤집어 쓴 모습밖에 보지 못한 종인은 찬열에게 조잘조잘 말하는 저 사람은 누굴까 생각하다 또 그만두었다. 졸려…….

경수는 침대에 누워 곰인형을 끌어안고 통화하며 웃는 모습을 촬영 중이었다. 꼭 다람쥐가 큰 도토리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종인은 어느새 귀찮다는 생각이 아닌 경수와 다람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스텝들 잠깐 휴식! 다음이 마지막 컷인 손 촬영이니까 준비해 주고! 디오 씨는 동생분하고 설정 설명 듣도록 할게요. 디오 씨 동생분! 와주시겠어요?!"


종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감독과 경수가 있는 쪽으로 가서 섰다. 경수는 종인을 미안하단 듯 바라봤지만 당사자는 계속되는 동생이란 호칭에 나이 차가 얼마였는지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본인이 형인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말해줄게요. 여기서 손이 세 가지로 해석되길 원해요, 나는. 집에 찾아온 여자 애인 손, 집에 놀러와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성 친구 손, 마지막으로 남자 애인 손. 손은 그냥 자연스럽게 내밀면 되는데 디오 씨 연기가 중요할 것 같네. 알겠죠?"
  "네!"
  "전 그냥 내밀면 되는 겁니까?"
  "맞아요. 그럼 둘 다 식탁 쪽에 가서 마주보고 앉아요."


종인과 경수는 어색해하며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감독은 우선 둘이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자신이 사인하면 손을 내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수는 그저 어색하게 웃고 종인은 무표정으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몇 번 만난 적도 없고, 만났을 때도 말없이 게임을 하고 낮잠을 잔 게 다여서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알 리 만무했다. 종인은 이 상황에서 대화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경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경수는 눈을 크게 떴다가 머뭇머뭇 손을 잡고 심호흡을 했다.

얼른 촬영을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야. 그래. 우선 여자친구라고 생각하자. 경수는 눈을 감았다 뜨고 깍지를 껴 종인을 사랑스럽단 눈으로 보았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에 종인은 기분이 묘해져 시선을 피하고 짧은 헛기침을 뱉어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세트장에 울리고 있었다.

경수는 깍지를 풀고 종인의 손바닥이 식탁에 닿게 하고 그 손등에 자신의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활짝 웃어 즐겁단 표정을 지어냈다. 친구에게 애인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 죽겠단 표정이군. 감독은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얘는 난 놈이라고.

이제… 남자친구. 여자친구와 어떤 차이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였다. 그럼……. 경수는 종인의 다섯손가락만을 살짝 움켜쥐고 종인의 시선에서 살짝 벗어난 곳을 쳐다보며 수줍게 미소지었다. 종인은 내려져있는 반대편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묘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기분은 낯설었다.

찬열은 백현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경수와 종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종인의 심정이 자신에게는 너무 잘 보였다. 당황스러움이 저렇게까지 드러난 표정이라니. 촬영 자체가 당황스러운건지, 저 컨셉이 당황스러운건지는 모르지만 나름 보는 재미는 있었다.


  "형형."
  "어?"
  "재밌어 보여요?"
  "음… 그냥. 어쨌든 내가 모시는 분이잖아. 걱정되기도 하고."


CS전자는 결코 작지 않지만, 종인은 어리니까. 찬열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이 중요한 거지, 뭐.


  "촬영 끝났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경수는 일어나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허리를 90도 숙여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종인은 그런 경수를 잠시 보다, 찬열에게 이만 가보자고 손짓했다. 찬열은 백현에게 연락하란 말을 전하고 종인과 함께 촬영장을 벗어났다.


  "어… 승환 형! 사장님은요?"
  "아까 보니까 비서님이랑 나가시던데?"
  "인사 못 드렸는데! 혹시 번호 알아요?"
  "아니. 비서님 번호만 알지."
  "알겠어요. 다음에 뵈러 갈 때 직접 인사 드릴게요."


'도디오다아아아!' 말처럼 달려와 자신에게 매달리는 백현 때문에 경수는 켁켁거리며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몇 번 반복하였다.

자신의 예상대로 종인의 손은 따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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