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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EDITION

쏟아지는 달빛에 샤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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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달빛에 샤워

플라주(FLAGE) 2016. 5. 23. 23:01

  "레이! 오늘 넌 휴강이었나?!"


종대의 큰 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선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종대는 한 번 더 크게 불렀다. 레이이!! 하지만 어항에서 찰박이는 소리만 들려올 뿐 어느 곳에서도 사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더워서 실신이라도 한 건가?! 걱정이 되어 레이를 찾아보려다 시계를 보곤 종대는 히엑하고 숨을 들이켰다. 강의 시간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레이 나 다녀올게! 나 늦었어!"


여전히 어항에서 나는 찰박 소리만이 들렸다.





쏟아지는 달빛에 샤워 (w. kamongflage)
Lay x Chen







김종대 세이프!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종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분만 늦어도 얄짤 없는 교수님이었고, 으레 모든 학생들이 그렇듯 종대 또한 학점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본인들 세상에 갇혀있는 루한과 민석의 곁에 앉으며 종대는 찬열을 향해 엄지를 척 내보였다. 찬열은 씩 웃어보이곤 입 모양으로 레이의 행방을 물었다. 종대는 어깨를 으쓱였다. 둘의 동거는 비밀이었다.

재수강은 안 된다는 일념하에 종대는 신 들린 듯이 교수님의 말을 받아적고 있었다. 그에 반해 루한은 민석의 손만 잡은 채로 그저 듣고만 있었다. ─루한은 듣는 순간 체화(體化)시켜버리는, 천재이기 때문이랄까─ 강의가 지루한 나머지 하품을 하는데 종대에게서 나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종대."
  "천재는 꺼져."
  "너한테서 물냄새 나."


뭔 냄새? 종대는 팔을 들어 자신의 몸을 킁킁댔다. 난 아무 냄새 안 맡아지는데?


  "레이 특유의 물냄새인데."
  "레, 레이가 여기서 왜 나와. 조용히 해. 나 필기 할 거야!"


루한은 괜히 말을 더듬는 종대는 의심스럽게 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민석을 보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





  "레이이… 어딨어?"
  "나 부엌! 저녁 안 먹었지?"
  "응응!"


종대는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레이가 저녁을 준비하는 걸 지켜보다 코를 킁킁거렸다. 물냄새…?


  "뭐해?"
  "루한이 나한테서 네 물냄새가 난대."
  "그런가?"


나도 몰라. 그런데 아침에 어디 있었어? / 아아. 어항에 있었지. / 아~ 어항에 있…?!


  "어항?!"
  "응."
  "저거 엄청 작아!"
  "음… 나 작게 변할 수 있어."
  "인어면 사람 형태잖아!"
  "그치만 한국 열대야는 너무 힘들단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논리성과 현실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대화에 종대는 혼란스러웠다. 어찌저찌 하다보니 레이가 인어인 걸 알게 됐고 인어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인(人)어가 작게 변한다니?! 게다가 물고기 형태로?!! 거짓마알!!


  "나름 네게 보이려고 니모로 변했었는데 휙 가더라. 나 상처야, 종대."
  "……."


으엉. 종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울고 싶었다.



*





  "종대! 얼른 와 봐!"


과제를 붙잡고 낑낑거리다 말고 종대는 욕실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왜! 무슨 일 났어?! 다쳤어?! 그럼 안돼, 레이이! 으어엉! 아무 말도 못 꺼냈는데 유난스럽게 걱정을 하는 종대의 모습에 레이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보여줄 게 있어서 부른 거야. 욕실 불 끄고 다시 들어와 봐.


  "부, 불은 왜?!"
  "얼른. 이상한 생각 말고."


내, 내가 뭘! 이라고 외쳤지만, 종대가 뒤돌기 전 레이는 종대의 붉어진 뺨을 봐버렸다. 이거 보여주고 키스해 줘야지. 레이는 자신의 미끌거리는 다리를 문질렀다.


  "자. 끄고 왔어. 뭘 보여… 우와…!"
  "색이 변했어."
  "저번보다 더 반짝여! 진짜 예뻐!!"
  "그래?"
  "응응! 와! 나 만져봐도 돼, 레이?"
  "당연하지."


종대는 어둠 속에서 청록빛을 발하는 레이의 다리를 도자리 다루듯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었다. 연신 와와 감탄을 쏟아내며 밝은 기운을 내뿜는 종대가, 레이는 그 어떤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다.

널 닮은 푸른 빛깔을 내 몸에 담게 돼서, 정말 기뻐.

레이는 종대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그 어느 곳에서도 없는 청록빛 달빛이 종대의 집 욕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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