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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P that leads to you

플라주(FLAGE) 2016. 5. 23. 23:03

이성이 넌 지금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다고 외쳐댔지만 난 그만큼 절박했다. 한국에서 네 소식을 듣자마자 중동 지역의 이름 모를 사막까지 날아왔다, 테러가 난무하는, 내 감정이 절박해진.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 중 테러를 맞딱뜨렸고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는 소식을 넌 들었어? 단순히 도망가다가 캠프에서 멀어졌을 뿐이잖아, 넌. 그런 거짓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내가 직접 찾을 거야. 그러니 경수야… 제발……





the MAP that leads to you (w. kamongflage)
Kai X D.O.






  "아… 죽겠다."
  "몇 시간 남았어?"
  "절망스럽게도 당직이야."
  "헐이네."


경수는 대답하기도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휴게실 테이블에 몸을 길게 늘어뜨렸다. 종인은 경수 옆에 앉아 뒷목을 주물러주었다. 레지던트 2년 차 임에도 어째서인지 쉴 틈이 1년 차 때보다 적은 것 같았다. 2년 차라 더 바빠진 걸 수도 있겠지만.


  "됴꼬미."
  "왜 감둥아."
  "얼굴 좀 보자."


매일 보구만 뭘 또 봐… 투덜대면서도 경수는 몸을 일으켜 종인과 마주보고 앉았다. 담당 의사가 달라 지금처럼 작정하고 만나는 게 아니면 둘은 서로를 지나치며 얼굴을 스치듯 보는 게 다였다. 그것은 입학 때부터 줄곧 사귀는 상태인 둘에겐 불만사항 중 하나였다. 종인은 경수의 양 뺨에 두 손바닥을 대고 쪽쪽 짧게 입을 맞추었다.


  "우리 못한 지 얼마나 됐지?"
  "몰라. 한 세 달 됐나?"
  "미쳤네."
  "감둥아."
  "뭐, 됴꼬미."
  "네가 말하고 나니까 갑자기 하고 싶다."
  "…너 많이 음흉하다?"


어. 나 음란마귀임. 경수는 으흐흐거리며 종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고, 종인은 마른 경수의 등을 쓸어주었다.



*




  「안내 방송 드립니다. 제 3병동, 제 3병동 담당자분들은 모두 114호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제 3병동, 제 3병동 담당자분들은 모두 114호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병원 전체에 안내 방송이 울려퍼졌다. 종인에게 다가가려던 경수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저도 제 3병동 담당 레지던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짜증이 제대로 난 경수를 멀리서도 알아챈 종인은 머쓱하게 웃으며 경수에게 얼른 가보란 손짓을 해주었다. 경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머리 위로 작게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종인이 그에 푸하 웃음을 내뱉고 따라서 손가락 하트를 내보였다. 경수는 그제서야 뒤돌아 114호실로 향했다. 

휴게실에서의 짧은 만남 후 오늘 다시 마주치기까지 장장 5일이나 걸렸다. 자신이 존경하던 교수님 밑에 있게 돼서 기뻤던 것은 딱 첫 날까지였다. 교수는 자신을 죽지 않을 만큼 부려댔다.


  "114호… 쇼크… 처리…"
  "하지만…… 괜찮…"


무슨 대화지? 교수님 목소리인 것 같아 경수는 대화가 이뤄지는 쪽으로 다가갔다. 114호실이 있는 쪽은 루게릭병 환자 같이 희귀병이면서 거동이 힘든 환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어느 병동보다 조용했다. 경수는 왠지 이 조용함이 겁나기 시작했다.


  "그냥 쇼크사 처리하라니까!!"
  "보호자가 해부 요청하면,"
  "그 두 약물 바뀐 건 반응 안 나타나. 그러니 그렇게 처리해!"
  "네, 교수님."


경수는 입을 틀어막고 재빨리 114호실로 뛰어들어갔다. 환자 손을 붙들고 울고 있는 보호자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주님 이이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옵고… 주여…… 경수는 느린 걸음으로 병상에 다가갔다. 허옇게 질린 얼굴을 보고나서야 귀가 트였다. 삐- 한 음만을 내뱉는 기계가 두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종인이, 종인이가 보고 싶었다.



*




  "갑자기 오프 냈대서 놀랐잖아. 어디 아파?"
  "모르겠어."
  "얼마 전에 전체 호출 당했을 때 가다 다치기라도 한 거야?"
  "……."
  "됴꼬미. 걱정되잖아. 나도 너 따라 급하게 오프냈,"


경수는 다급하게 종인을 끌어안고 입을 맞댔다. 자신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벅찼다. 가족들보다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굳고 단단한 종인이 필요했다.



*




밀려들어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데 오히려 이 턱턱함이 자신을 늪에서 끌어올리는 느낌이었다. 종인의 어깨를 더욱 꽉 붙들었다. 예상치 못한 거센 악력에 종인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윽, 경수야…"
  "종인아… 종인아…"


경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이름엔 많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슬픔, 다급함, 아픔, 쾌락. 이유를 모르는 자신은 그저 경수와 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경수가 오늘 같았을 때가 단 한 번도 없었어서 어쩐지 종인은 슬퍼졌다. 이어진 몸에서 경수의 감정이 전이되는 것만 같았다.



*




그렇게 관계를 맺고 며칠 후 경수는 국경 없는 의사회에 참가할 것이라 말했고 종인은 말없이 작디 작은 몸을 안아 토닥여주었다. 관계 당일에 경수는 울며 얘기를 토해냈기 때문에 가능한 위로였다. 종인은 경수가 그 누구보다도 의사란 명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경수가 슬퍼졌다. 그 절망을 자신은 반도 치료해주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수야……"


황야를 쬐는 볕은 종인을 좀먹고 있었다. 종인은 부드러우면서 까슬한 모래 벌판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종인아…'
  "됴꼬미."
  '감둥아.'
  "도경수…"
  '김종인!'


널 보고싶어. 그런데 네 모습과 목소리가 신기루 마냥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해. 정말 보고싶어, 널. 볼 수 있겠지?

볕은 이 순간까지 황야 위 모든 것들을 좀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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