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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떠한 감정 (비긴어게인 오마주)

플라주(FLAGE) 2016. 5. 23. 23:14

  "제가 새 곡을 쓰고 이곳에서 처음 공개하는데요. 덜 다듬어졌더라도 봐주시길 바랄게요."


복잡한 제 상황에 머릿속을 비워가던 찬열은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0대 초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적지 않은 소음 속에서 꿋꿋이 가사를 이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찼다. 도시 속에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한 노래라… 찬열은 피식 웃고는 눈을 감고 노래를 자세히 듣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음색이었다, 저 목소리는.





그 어떠한 감정 (w. kamongflage)
Chanyeol x Baekhyun







  "형은 무슨 일이 있었어요?"
  "우리 처음 보는 사이 아닌가?"
  "제가 거창하게 힐링을 해주겠다 그런 거 절대 아니에요. 그냥… 으레 이런 곳을 찾는 사람들 감정은 비슷하잖아요. 공유하는 거죠, 뭐."


제 앞에 앉아 바에 상체를 늘어뜨려 턱을 괴는 '노래하던' 청년이 찬열은 웃겼다. 비웃음 같은 게 아니라 순수한 웃음 말이다. 이렇게 감정을 모으고 모아 노래를 만드는 걸까. 그런 것 치곤 노래에 감성이 적절히 녹아있던데.


  "비싸게 구시네요. 그래요, 뭐."
  "……."
  "각자만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노래를 마치고 제쪽으로 와 말을 꺼내던 청년은 미련 없단 듯 제 옆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게를 벗어났다. 찬열은 눈을 치켜떴다 뉘이고 잔을 다시 입에 가져갔다.
홀드 버튼을 누르자 화면엔 저와 제 아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렇게 한참을 화면을 두드려 꺼지지 않게 만들던 찬열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일 아닌 것 같으면서도 별일인 것 같고… 딱히 규정을 내릴 수 없는 심정이었다. 술기운에 몸이 후끈거려 자켓을 손에 걸치고 대리 운전을 부르려했다.


  "저기요!!"
  "…너…"
  "그래요. 처음 보는 사이에 털어놓기 좀 그랬겠죠. 저부터 말할게요. 전 애인하고 같이 음악을 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뮤즈였어요. 온갖 감정을 걔하고 공유 가능했거든요. 그러다 그 애 노래가 영화에 삽입되고 뜨면서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됐어요. 빌어먹게도 걔만요."


청년은 이게 끝이라는 듯 입을 다물고 찬열을 빤히 쳐다봤지만 찬열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저게 끝이 아님을 찬열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한숨을 푹하고 내뱉었다.


  "…좋아요. 저게 끝일 리 없죠. 그딴 계약 따위로 갈라설 리도 없고요. 저 없이 작업하던 중에, 다른 사람에게서 느낌이 왔대요. 그게 뭔지 알고 싶다던데, 그게 헤어지잔 소리 아니에요?"
  "아마 그렇겠지."
  "젠장. 다시 떠올려도 짜증나네."
  "…잠깐 어디가서 좀 앉을까?"


자켓이 없는 쪽 손목을 잡힌 채 찬열은 어딘가로 끌려갔다.



*





이정도면 됐죠? 끌려가는 길에서야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준 백현은 공원 벤치를 맨손으로 털고 앉았다. 찬열은 눈썹을 문지르곤 그 옆에 앉았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버릇이었다.


  "네 사정이랑 다르면서도 비슷해."
  "비슷하단 점은 다른 사람이 껴있다는 거일 것 같네요."
  "…맞아. 결혼 1년 차인데 와이프 직업이 바텐더야. 우연히 난 카톡을 봤고. 그대로 게임 끝."
  "와… 결혼 1년 차면 신혼 아니에요?"
  "연애가 3년이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평소 자신의 퇴근 시간부터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도 주머니에서 느껴지지 않는 진동에 찬열은 피식 웃었다. 한바탕 싸웠음에도 그 남자랑 놀고있겠다는 의미인가? 머리가 괜히 지끈거리는 것 같아 벤치에 몸을 쭉 늘어뜨렸다. 선선하면서도 차가운 밤공기에 정신이 좀 드는 것도 같았다. 
백현은 가방에서 이상한 모양새의 물건을 꺼내 찬열에게 건넸다.


  "도시 구경 제대로 해본 적 있어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데. 이건 뭐지?"
  "애인이랑 쓰던 이어폰 꽂이요. 음악 하나에 연결된 이어폰 두 개면 버석한 이곳도 축제가 되거든요. 어때요, 놀래요?"
  "…좋아. 뭐 어떻게 하는데?"


백현은 자신의 휴대폰에 이어폰 꽂이를 꽂고 이어폰 두 개를 연결하여 한 쌍을 찬열의 귀에 꽂아주었다. 잔잔한 발라드─사랑 얘기가 아닌─를 선곡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결에 따라 일어난 찬열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그런 찬열의 눈앞에 백현은 핑거스냅을 튕겼다.


  "백현 시티 투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찬열은 야밤에 몇 시간동안 돌아다니면서도 여전히 들뜬 모습의 백현이 신기했고, 자신도 어느새 그에 동화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다니는 장소에 맞게 노래를 선곡해주며 그 노래에 얽힌 얘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터놓았고, 모든 박자에 몸을 흔들거렸다, 백현은. 그리고 자신은 새벽이 주는 감성과 백현에게서 전해져오는 에너지를 부정하지 않았다. 모든 단어들에 반응해 주었고 심지어 춤도 추었다. 살짝이었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웃어본 적이 언제더라.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에 허밍을 내는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을 데리고 이런 투어를 다닐 수 없어서 노래를 만드는 것일까. 자신을 위해 곡을 썼으면 좋겠는데. 맞잡은 손을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타인을 위한 생각을 해보았다.


  "형."
  "왜?"
  "다 잘될 거예요. 감정을 풀 데가 없어서 쌓이고 쌓이다보니 다 화나는 일 투성이라고 생각되는 거니까요."
  "…그래. 너도 잘될 거야."


저야 뭐… 백현은 어깨를 으쓱하곤 찬열에게서 이어폰을 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간 찬열은 허전한 귀가 낯섦을 느끼곤 괜히 목덜미를 문질러보았다.


  "아마도 마지막 포옹."


백현은 찬열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느리게 두드렸다. 찬열은 백현의 단정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눈앞의 풍경을 찡그리고 쳐다보았다.
뭔가, 그랬다. 끌어오르기도 하고 내리누르기도 하고 터뜨리고 싶기도 하고 잠재우고 싶기도 하고. 하얀 뒷목 직전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펴고는 백현을 떨어뜨렸다.


  "반가웠어요. 재밌었고."
  "나야말로."
  "저 먼저 등 보일게요."


꾸러기처럼 씨익 웃으며 백현은 뒤를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찬열은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 자신의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백현은 몸을 돌려 멈춰서서 자그마해진 찬열의 실루엣을 한참 보았다. 그렇게 보았다. 작은 손이 가슴을 꾹꾹 내리눌렀다. 묻는 게 맞다고 그렇다고,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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