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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 Doctor

플라주(FLAGE) 2016. 5. 23. 23:24
백현은 오른쪽 어깨를 붕붕 돌리며 휴게실에서 나왔다. 이틀 내내 잠을 10시간도 못 잤더니 지금 당장 털썩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카페인도 이제 들어먹질 않고, 되려 카페인이 ‘난 이제 변백현 지겨워! 꺼져!’라고만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백현은 ‘겁나’ 힘든 상태이다.



  “똥 쌤!”
  “그 놈의 똥은 왜저렇게 불러대는 거야…”


성이 변이어서 병원에 있는 시간 동안 거의 항상 똥 쌤으로 불리고 있긴 한데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기 어려운 별명이다. 정정하기도 귀찮으니 백현은 그냥 대답해주고 끝내곤 한다. 다들 날 너무 애정해서 탈이야.


  “교수님께서 쌤 오늘 6시부터 나오지 말래요.”
  “…나 잘리는 거야?”
  “뭐래요. 주말 오프인데 조기 퇴근시켜 주는 거지, 무슨 그런 아쉬운 소리를 하고 그러시나.”
  “나 은근 기대했는데.”
  “어림 없죠.”


6시면… 세 시간 남았네. 어휴. 백현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기왕 선심 쓰실 거 지금 당장 퇴근시켜 주시지. 쪼잔하게 2시간 조기 퇴근은 뭐람. 본인도 쪼잔한 거 아시니까 나한테 직접 연락 안 주신 걸 거야. 외과 층으로 향하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진료하다가 졸아도 내 죄가 아니라는 생각따위를 했다.


  “또옹 쌔앰~”
  “뭐뭐! 또 왜애!!”
  “지나가시길래요.”
  “아 진짜!! 나 좀 놔둬어어!! 똥 쌀 여유도 없거든?!!”
  “아, 뭐예요. 더러워!”
  “…….”


사직서각.



***





다 됐다. 찬열은 마지막 케이크에 딸기 데코를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오늘 무슨 날인지 유독 케이크 주문이 많아서 아침부터 허리도 못 펴고 계속 주방에만 있었다. 간이 의자에 앉아 몸을 축 늘어뜨리고 오늘 하루 진동 한 번 안 울리던 폰을 꺼냈다. 다행히 백현의 병원에서 아직은 응급 상황이 없던 것 같다. 며칠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데 퇴근 때까지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네. 오늘 퇴근이 8시였던 것 같은데.


  [나 오늘 6시 퇴근. 꼴랑 두 시간 땡겨주심.]


툴툴대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데리러 갈게.’ 찬열은 답장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한가한 시간대라 카운터에서 게임을 하는 직원에게 다락방에서 좀 자겠다고 언질을 했다. 백현의 출퇴근을 보겠다고 스스로 괜한 똥고집을 부려왔던 터라 자신도 덩달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넣고 눈을 감았다. 제에발 백현이 퇴근 때까지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금방 잠들었다.



***





오늘따라 병원이 조용해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우스겟소리로 ‘불안하다’, ‘폭풍전야 아니냐’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왠지 다급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전화 소리가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관광 버스를 포함한 13중 추돌 사고가 일어나 현재 이송 중이라는 연락이었다. 원내 모든 외과의들에게 콜이 갔고, 그들 중에는 퇴근 준비 중이던 사람들,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 퇴근 1시간 전이던 백현에게 콜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개새끼가 박고 지랄이야. 날씨도 추워서 조심조심 운전해도 사고 쉽다는 거 몰라?”


백현은 소매를 걷어올리고 응급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5분 뒤 도착 예정이면 준비 시간이 상당히 빠듯한 상황이다. 미친듯이 반복해서 울리는 벨소리를 무시하고 일단 뛰었다. 어차피 빨리 와달라는 호출일 게 뻔하다. 볼 안쪽에 혀를 굴렸다. 사고친 새끼를 보면 가만 안 두겠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고야 있지만, 막상 환자들을 목도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자신을 안다.


  “변 선생님!!”
  “지금 우리 쪽으로 오는 환자 몇이래요?”
  “나눠서 오기 때문에 저희 쪽에는 22명이요.”
  “우리 응급실에 베드 모자라지 않나? 요청했어요?”
  “네. 빈 병실에서 끌어오기로 했어요.”
  “위독한 환자도 있대요?”
  “있는 것 같아요. 애들도 있댔어요.”


미친. 소아과 선생님들도 몇 명 불러요!! 백현은 가운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백현은 응급 상황 때만 안경을 꺼내 쓰는데, 저 안경만 썼다 하면 사람이 이중인격 마냥 엄청 예민해지고 사나워진다. 물론 응급일 때야 모든 의료진들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지만 백현은 그정도가 과하다고 해야 하나. 염라대왕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응급 땐 그 누구도 백현은 똥 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백현 쌤 아니면 변 선생님이다. 좀 있으면 퇴근인 변 쌤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다들 손목과 발목을 풀었다. 철인 3종 경기 못지 않은 체력이 요구되는 전쟁터가 코앞이었다.



***





찬열은 휴대폰 화면을 빤히 봤다. 사실 자다 깨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꽉 감았다가 뜨고 미간을 좁혔다. 이제야 화면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응급이야 먼저 가]


아…… 찬열은 탄식했다. 문자 수신 시간을 보니 16시 59분이다. 퇴근 한 시간 전에 응급이라니. 지금이 몇 시지? 시간 설정을 24시간제로 해놨더니 시간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평소엔 잘만 읽히는데 피곤하니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아. 5시 30분. 허리를 펴고 좌우로 스트레칭을 하고 볼을 긁었다. 7시 쯤엔 끝나지 않을까… 찬열은 기다리기로 마음 먹고 다락방에서 내려갔다. 직원은 케이크를 포장 중이었다.


  “오늘 일찍 가도 돼.”
  “사장님 오늘 6시에 퇴근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백현이가 늦어질 거래.”
  “아아. 기다리시게요?”
  “응. 7시쯤 끝날 것 같아서.”
  “추측인 거 보니, 백현이 형 또 응급?”
  “응.”
  “어후. 의사들 진짜 대단해… 전 절대 못해요.”
  “나도.”
  “사장님은 일단 수학을 못하시니까요.”
  “야!”
  “헿.”


납작해서 때리기 딱 좋은 뒷통수를 한 대 치고는 포장하던 케이크를 뺏었다. 썩 꺼져버려!



***





  “…….”


백현은 마지막 환자에게서 떨어져서 벽에 기댔다. 손이 떨렸다.


  “마지막 환자 끝났습니다!! 모두들 노고하셨어요!”


수간호사의 외침에 응급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박수를 치자, 다리가 풀려 주저 앉았다. 생각보다도 크게 다친 환자들이 많아서 눈 깜빡이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었다. 너무 힘들어서 마지막 환자 때는 구역질이 나올 뻔 했다. 머리가 띵했다.


  “변 선생님. 괜찮으세요?”
  “…저 좀 놔둬 주실래요? 지금 토할 것 같아요.”
  “…….”


다들 막내 쌤을 쳐다봤다. 정작 막내 쌤은 갈증을 달래느라 그 빤-한 눈길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수간호사가 옆구리를 찌르고 나서야 억!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
  “…….”
  “……아……”


주위의 격한 손짓의 의미를 깨닫고 눈썹을 팔 자로 만들었다. 또 나예요…? 막내의 숙명이야. 얼른 가. 뉘예뉘예. 피 범벅이 된 가운을 벗고 팔짱을 낀 채로 밖으로 나섰다. 응급이 끝나고 나서도 예민한 백현 쌤을 통제 가능한 건 병원 맞은편 베이커리의 찬열 사장님 뿐이었다.



***





7시가 넘었는데도 소식이 없어서 찬열은 카운터에 턱을 괴고 손가락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긴 했는데 생각보다도 큰 사고였나 보네. 그냥 가야하나 싶다가도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아서 계속 버티는 중이다. 클로징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지만, 팻말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딸랑. 찬열은 미어캣 마냥 고개를 쳐들었다. 


  “사장니임.”
  “…끝났어요?”
  “네에. 저와 함께 가주셔야 하겠습니다아.”
  “잠시만요. 가방만 챙기면 되거든요. 잠시만요.”


답지 않게 허둥대는 찬열을 보며 막내 쌤은 커피 머신 쪽을 기웃거렸다. 남는 커피 없으려나… 나 오늘 당직인데…… 커피가 필요한데…… 백현이 좋아하는 조각 케이크도 함께 챙기다가 막내 쌤을 보고는 찬열은 급하게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커피부터 챙겨드리곤 했는데 오늘따라 왜이렇게 멍청한지 모르겠다.


  “여기 커피요.”
  “앗. 감사합니다! 저 오늘 당직이라 카페인 진짜진짜 필요했거든요.”
  “오늘 응급 심했어요?”
  “말도 마세요… 다른 쌤들도 지인짜 바쁘셨지만 저는 변 쌤 무슨 분신술 쓰시는 줄 알았어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고 찬열은 케이크를 안 들고 있는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엄청 춥네. 오늘 백현이 외투가 뭐였더라. 목도리 했었나?



***





숨 좀 돌리고 있는데 다들 얼른 퇴근하라고 등 떠미는 바람에 정신없이 퇴근 준비를 마치고도 백현은 휴게실 의자에 앉아 멍 때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를 보니 벌써 8시였다. 조기 퇴근은 무슨… 결국 원래 퇴근 시간이었다. 집 가기 귀찮아… 찬열이도 먼저 집에 갔을 텐데 그냥 당직실에서 잘까…


  “백현아.”
  “엉?”


백현은 고개를 거꾸로 젖혔다. 시야에 거꾸로 서있는 찬열이 들어와 있었다. 어쩐지 다들 퇴근하라고 다그치더라. 피식 웃고는 자신의 옆 의자를 툭툭 쳤다. 테이블 위에 케이크 박스를 올려놓고 찬열은 의자에 앉아 백현을 안아줬다. 어이구. 우리 변 멍뭉씨 고생하셨슴다. 


  “오늘도 박 사장님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슴다.”
  “잘하셨슴다. 저도 오늘 변 선생님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었슴다.”


둘이 한창 꽁냥거리다가 케이크 박스를 열어 찬열이 백현에게 먹여주는 모습을 모두들 블라인드 넘어로 훔쳐보다가 뒤를 돌았다. 어휴. 눈꼴 시려.


  “다들 봤어요? 찬열 씨 오자마자 똥 쌤 안경 벗는 거?”
  “저 안경을 깨뜨리든가 해야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똥 쌤만 아니었어도 찬열 씨를 확…”
  “아서라, 아서.”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젖고는 각자 일을 하러 흩어졌다. 솔로가 넘쳐나는 당직 부대는 일이나 하러 꺼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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