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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의 연애 (서울 편)

플라주(FLAGE) 2016. 5. 23. 23:21

경수는 마주보고 있는 거울에서 멍하니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멀미가 났다. 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아아… 어쩌다 사방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이러고 있게 된 거지?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고를 시작하기도 전에 경수는 높게 소리지르며 갈색 생머리를 더 꽉 잡아당길 수밖에 없었다.


“디디.”
“아, 카이… 제발… 읏! 아!”
“집중, 하라니까.”
“하고, 흑!! 하고 있어. 살살… 제발…”
“디디는 다, 후, 티가 난다니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질척이는 소리가 더욱 울리는 것 같아서 괜히 민망해 죽겠는데, 이 남자는 자존심 상할 정도로 섹스를 정말 잘해서 더 죽을 것 같았다. 카이가 그렇게 세뇌시키는 ‘집중’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되새기다가 결국 경수는 항복 선언을 했다.


“카이…! 거기! 윽, 빠, 빨리! 흑!! 세게에… 응?”


하얀 몸이 결국 바닥으로 밀려나고 언어로 표현 못할 의성어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타지에서의 연애 (서울 편) (w. kamongflage)
KAI x D.O







준면은 자신이 러시아에 다녀온 사이에 헬쓱해진 듯한 경수의 얼굴을 보며 손등을 긁었다. 나 별로 길게 체류 안 했는데……. 준면은 자신의 어떤 행동이 잘못됐는지에 대해 눈치 채는 데에서 유독 둔했다. 준면을 고용한 내내 그걸 느껴온 경수는 그냥 마른 세수를 할 뿐이었다.
경수는 TEN Agency 한국 지부에서 무대 디렉터로 활동 중이었다. 사실 프랑스 지부에서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의 일 처리가 너무 버거워 준면을 고용한 것이었다. 일종의 비서 개념으로. 워낙 성격이 사람을 자신의 아래에 두는 걸 싫어해서 동료라는 개념으로 일을 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2주 휴가를 줬는데 무려 3주를 더해서 한 달 간 감감무소식이었던 건 심하지 않아…?


“너 이번에 내가 누구 맡았는지 알긴 해?”
“응. 카이잖아.”
“언제 알았어?”
“기사 뜨자마자?”
“그걸 알고 있었네?”


경수의 눈가가 피곤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준면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말투로 자신의 여행담을 이어나갔다.


“나 우리 에이전시 기사 매일 검색해. 세훈이가 뭐라고 엄청 구박해도 꿋꿋이 와이파이 비밀번호 알아내서 구글링 해보고 그랬어.”


세훈은 또 누구야. …지금, 그러니까, 남자랑 히히덕거리느라, 3주 더, 놀았다는 거야? 일을, 팽개쳐두고?


“나 무대 디렉터야. 그런데 네가 3주 더 말없이 노는 바람에 구두 계약부터 문서 계약까지 내가 다 처리하고 회의 스케줄 잡고 회의 짜고 무대 소품 다 확인하고 등등등!! 나랑 장난해?!”
“그러길래 내가 자잘한 건 그냥 직접 하지 말랬잖아. 무대 소품 그거 뭐…”
“말 하지마! 그냥 나가! 혼자 있을 거야!”
“어차피 나가려고 했어. 네 사무실 답답하거든.”


지난 밤에 완전히 나가버린 목소리가 더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경수는 심슨 마냥 준면의 멱살을 잡고 짤짤짤 흔들고 싶었다.


“그런데 너 일만 한 거 아니잖아.”
“시비 걸어?”
“카이랑 잤지? 찌라시에 떴어.”
“…….”
“…진짜야? 그냥 찔러본 건데. 그럼 카이 공연 VVIP석 2개 부탁해. 세훈도 온대.”
“…….”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취향을 너무 잘 아는 준면이 싫었다. 아니, 그전에 취향 박살 수준인 카이가 더 싫었다. 짜증나…… 그런데 웃긴 건 잠깐의 떠올림만으로도 홧홧거리는 자신의 몸의 반응이었다. 결국 경수는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렸다. 카이가 보고 싶었다.





***







카이는 내한 공연을 하러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 공연의 무대 디렉터를 맡은 건 경수이고.

카이는 동양계, 남미계, 유럽계가 섞인 쿼터 혼혈 가수로서 데뷔 때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아왔다. 어느 인종에도 속하지 않는 그는 배척되면서도 받아들여졌다. 거부감에 그의 노래와 춤을 거부하다가도 애쉬 블루(ash-blue)의 눈동자를 마주하면 순식간에 팬이 되는 경우는 흔하디 흔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카이는 노래와 춤을 결코 못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겼다. 그런 그가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에서도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당연하게도 국내 공연 업체들끼리의 경쟁은 전쟁 수준이었다. Welcome to hell. 그래서 경수는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프랑스 지부에서는 꽤 잘 나가긴 했지만, 한국 지부에서는 딱히 이렇다 할 무대를 구상한 적이 없었는데 카이 측에서 먼저 연락을 줬으니 말이다. 몇 번이나 카이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을 졸린 눈 뿐이었다. 경수는 그 비읍 눈에 약했다.


‘네. TEN Agency 도경수 디렉터입니다.’
-안녕하세요. EX 엔터테인먼트 카이 공연 실장 박찬열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카이의 내한 공연 무대를 도경수 디렉터님께 맡기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예? 하지만 저희 쪽에선 제 무대 샘플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만, 카이가 직접 도경수 디렉터님께 맡기고 싶다고 해서요. 고집을 꺾기 힘들거든요. 부디 맡아주시겠어요?


‘부디’라는 단어가 왠지 카이의 색다른 성격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좀… 애 같은 성격을 의미하는 것 같았달까……. 그게 현실이 돼서 문제인 거지만, 솔직히 경수는 딱히 상관없었다. 이미 콩깍지가 씌이고도 한참 씌었다. 


‘프랑스에서 D.O로 활동하지 않았어요?’
‘네. 그런데 여기는 한국이니까 한국 이름을 쓰는 거죠. 저 한국 사람이거든요. 이민을 가서 그렇지.’
‘음… 발음 불편한데, 디디라고 부르면 안돼요?’
‘……네?’
‘디디요. 디- 디.’


경수는 하마터면 혼이 나갈 뻔했다. 저런 외모로 저런 눈으로 날 애칭으로 부른다니. 이건 반칙이야! 경수의 동공은 미친듯이 흔들렸고, 만날 귀에 이명 들리듯 ‘디- 디’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무대 모형을 만들기 위해 우드락을 자르는데 들려서 손을 베일 뻔한 적도 많았다.
사실 그 뒤로도 혼이 나갈 뻔한 적은 많다. 카이가 사실 자신의 팬이었다고 말하는데 경수는 하마터면 자신의 집에 데려갈 뻔했다. 경수의 CD장에는 카이의 앨범이 가지런히 가득히 꽂혀있다. 그 사이 사이엔 화보집도 있고 잡지도 있다. “시기별로 정리해 놓은 나의 팬심을 보아라!!”라고 외치고 싶은 걸 참느라 홧병이 날 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경수의 팬심은 카이와의 첫 섹스날에 들켜버렸다.


‘저거 나지?’
‘어… 어…’
‘왜 안 말했어, 디디?’
‘아, 니… 쑥쓰럽잖아……’
‘그래도. 난 기분 좋을 거 아니야.’


경수가 자신을 항변하기 위해 입을 뻥긋거렸지만 입에선 언어가 아닌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말티즈가 재규어에게 잡아먹히는 느낌이었다. 카이는 수시로 ‘내가 팬이랬을 때 기분 좋았어? 이만큼 좋았어? 얼만큼?’을 물었다. ‘이만큼’이 뭘 뜻하는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기가 빨린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온몸의 감각 세포가 동시에 점프한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앞뒤를 한순간도 절대 놔주지 않고 목덜미, 귓볼은 껌마냥 씹어대고, 숨 좀 고를라고 하면 등줄기를 훑어내리고. 경수는 그때만 떠올리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아서.





***







“Up! town funk you up, uptown funk you up~”
“카이이…”
“왜?”
“나 작업하잖아. 노래 꺼주면 안돼?”
“싫어. 따라부를 거야.”


경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뭐가 그렇게 심술인지 카이는 아까부터 자신의 작업실에서 발라드도 아닌 댄스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부르면서 리듬까지 타고 있다. 워낙 몸선이 예쁘고 리듬 타는 것마저 섹시하니까 그건 무대 구상의 영감이라도 되지만, 노래는…… 도저히 작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김준면이 일을 안해서 머리 아픈데 카이는 왜 그러는 거야… 경수는 금새 시무룩해져서 작업대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망했어. 오늘 무조건 야근일 거야. 사실 경수는 이 작업을 빨리 마무리 짓고 카이랑 놀고 싶었다.


“카이. 넌 내 마음을 몰라.”
“네 마음?”
“나 이거 얼른 끝내고 너랑 놀려고 했단 말이야! 왜 자꾸 방해해?”
“아. 나랑 안 놀아주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정수리만 보인 채로 야근이네 뭐네 투덜대는 게 지나치게 귀엽게 느껴졌다. 카이는 목을 뒤로 젖혀 숨을 몇 번 내쉬다가 엎드려 있는 경수의 쪽으로 걸어가 등을 껴안았다. 껴안기만 한 건데도 몸이 눈앞에 그려졌다. 카이는 입술을 축였다. 


“야근이 밤에 일하는 거지?”
“어. 이 쾌쾌한 작업실에서 캄캄한 밤까지 일을 해야해. 리듬 놓쳤어.”
“나랑 일해.”
“뭐라는 거야… 네가 어떻게 내 일을 해?”
“다른 일하면 되지. 여기서 놀아, 나랑 함께.”


…함께? 뭔가 표현이 이상한 거 같은데, 아닌가? 경수도 프랑스에 워낙 오래 있었어서 한국어 표현력에 취약했다. 뭐가 이상한 건지 생각하다가 카이의 손이 움직이는 걸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디디. 나 신경 써.”
“아… 카이… 여기, 으……”
“응. 네 작업실이지.”


카이는 경수의 몸을 돌려 작업실 책상에 상체를 눕혔다. 약간은 졸린 듯한 묘한 색의 비읍자 눈이 자신을 빤히 보자 경수는 약간은 더운 숨을 내뱉었다. 오늘도 일은 글렀어. 렌즈를 끼울 수도 없고……


“대신, 살살. 응?”
“응. 살살.”
“약속해. 나 내일 점검, 아아… 가야, 되는 읏, 되는…”
“응응. 알았어, 디디.”
“으, 거기, 거기 만져줘… 으응…”


일따위 알게 뭐야. 경수는 이상한 색의 눈을 쓰다듬다가 눈을 감았다. 지나치게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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