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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nsor(스폰서) 09

플라주(FLAGE) 2016. 5. 24. 12:48

찬열은 광고 기획팀의 보고서를 보며 볼펜을 딸깍거렸다. 신선한 것 같기도 하고 진부한 것 같기도 하고. 보고서에 쓰여진대로 광고를 머릿속에서 한참을 구상해 보았으나 여전히 난해하였다. 한숨을 쉬고, 신선도 이전에 당사자의 허락을 받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서 찬열은 사장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사장님."
  "……."
  "사장님!"
  "어, 어?"
  "뭐하시길래… 아. 그 서류 아직도 보고 계세요?"
  "응. 중국어는 오랜만이라 좀 헷갈려서."


종인은 한자로 가득 찬 종이를 손에서 놓고 목을 돌렸다. 중국에 위치해 있는 공장에서 기계 교체 건으로 보고서를 보내왔는데 전부 중국어로 쓰여져 있었다. 이전 담당자는 항상 영어로 보고서를 써서 보냈기 때문에 종인에게 중국어 원문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종인은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가 손을 떼고 찬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번 신형 휴대폰 광고 기획안이 올라왔어요. 주모델은 제 의견대로 도경수 씨인데, 서브 모델로 사장님을 쓰고 싶다네요."
  "뭐? 날?"
  "네. 일반인과 상류층 둘 다 노리고 싶은가봐요."
  "역효과 나지 않겠어? CS 제품 쓰는 CS 사장. 대중들한테 너무나 당연한건데 사장이 광고까지. 반감 생길 거야. 그냥 한 마리 토끼만 잡으라고 해. 전자 쪽으로."
  "네. 그럼 서류 다시 돌려보낼게요."


종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중국어 원문 서류를 집어들었다. 간만에 일에 매달려 끙끙대는 종인을 본 찬열은 최대한 소리나지 않게 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수정 사항을 적기 시작했다. 1인 모델로 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서브 모델 교체 후 2인 모델로 가는 게 나을까 생각하는 중에 휴대폰이 짧게 진동하였다.


  [형! 뭐하고 있어요? 전 후속곡 연습 중~ 'ㅅ']


풉. 이모티콘이 딱 백현을 닮아 웃음이 나왔다. 답장을 작성하던 도중 찬열에게 경수와 백현의 우정을 살려 광고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로 바로 물어보려다가 작성 중인 걸 지우며 찬열은 씨익 웃었다. 멍뭉이는 놀려야 제맛이지.


  [통화 돼?]
  [아뇨ㅠㅠ 샘이 혼내요ㅠㅠ]
  [이번에 경수 씨가 광고를 찍는데 나도 같이 찍는 게 어떠냐더라, 광고 팀에서.]

  -Rrrrr… Rrrrr…


  "여보세,"
  -형!! 도디오랑 찍을 거예요?! 왜에!


반응 속도가 LTE-A 뺨 치네. 찬열은 화장실로 자리를 옮겨 '변백현 모델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원래 사장님이었는데 아무래도 직위가 좀 높으시다보니 무산됐어. 좀 유명한 사람이 모델을 해야하니까 그러다 내가 추천됐고. 컨셉이 우정이라 경수 씨랑 안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도 그냥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어떤 거 같아?"
  -유명하고… 도디오랑 안면…


작게 중얼거리는 게 너무 잘 들려서 찬열은 손을 입에 넣어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뭐야! 그거 내가 하면 되겠네요!! 형 말고 나로 써요! 내일 당장 계약, 악!!
  -변백혀언!! 누가 전화하래!! 안 내놔?!
  -형! 내가 끝나고 연락, 아파요 샘! 배큥이 뉴뉴, 악!!


찬열은 세면대를 붙잡고 꺽꺽 웃으며 간신히 통화 종료를 터치했다. 배큥이 뉴뉴래… 세상에. 질투하던 멍뭉이도, 귀여운 말투를 쓰던 멍뭉이도 당장 끌어안고 뒹굴고 싶었다.


  "…뭐해, 형? 미쳤어?"


본인 몸을 끌어안고 웃고 있는 찬열을, 세수하려고 나온 종인이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





경수는 연습을 마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종인에게 줄 감사 선물도 잊지 않고 넣었다. 연습실을 나서기 전에 다 정리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도깽!!"
  "…또 너야?"
  "또라니! 오늘 우리 처음 보는데!"


오늘도 비글미를 철철 흘리는 백현을 대충 넘기고 경수는 가방을 메고 나가려고 했으나, 가방이 백현에 의해 거칠게 잡아당겨졌다.


  "왜! 나 사장님이랑 어디 가봐야 되거든? 좀 놔라!"
  "어디 가는데? CF 건으로 CS 가는 거야?"
  "겸사겸사.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데려가. 완전 중요하니까! 렛츠고!"


백현이랑 같이 간다는 말 못 들었는데. 경수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백현을 쳐다보았다. 무슨 꿍꿍이냐, 변백현. 그러나 백현은 평소처럼 경수의 눈빛쯤은 가볍게 무시하고 경수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연습실을 나섰다. 그리고 주차장에 갈 때까지 이어진 정신없는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네가 찍는 광고에 친구 역할로 나도 나옴.' 사장님이 끼워팔기를 행사하셨구나 라고 대충 결론을 짓고 경수는 준면의 차에 탔다.


  "경수야. 쟤는 왜 붙이고 왔니."
  "자기도 광고 같이 찍는다고 가야한다던데요?"
  "……."


준면은 뒷좌석에서 자는 척을 하고 있는 백현을 슬쩍 째려보았다. CS 측 제안으로 백현도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은 맞지만, 계약은 준면 자신만 가면 되는 거였다. 경수는 어차피 종인을 만나러 가야하는 길이고. 무슨 속셈인 거지? 백현이 종인의 비서 찬열과 사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준면은 CS 전자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속 의심을 거듭해야 했다.


  "저는 가운데 엘리베이터로 바로 사장실까지 가면 돼요. 사장님은 다른 층 들리셔야 하죠?"
  "응. 난 다른 엘리베이터 타야겠네. 끝났을 땐 승환이한테 연락해. 엘리베이터 왔다. 가 봐."
  "네. 안녕히 가세,"
  "변백현! 넌 왜 타!"
  "놀러요! 싸장님 빠이!"


열림 버튼을 눌러 백현을 잡을 새도 없이 닫혀버린 문을 준면이 허무하게 바라보았다.

저놈한테 또 당했어…….

위 생각은 엘리베이터에 타고있는 경수에게도 미쳤다.


  "너…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야?"
  "아니?"
  "그런데 왜 놀러가?"
  "난 찬열이 형한테 놀러가는건데."
  "찬열이… 뭐?! 비서님?"
  "응! 부끄부끄~"


저번에 친해진 건가? 얼마나? 경수가 백현에게 물으려는 찰나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백현이 튀어나갔다. 준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경수는 그저 의아해하며 사장실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을 땐 전혀 생각지도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찬열과 백현이 나란히 앉아있고 그 맞은편엔 종인이 앉아있었다. 경수는 뻣뻣하게 인사를 했고 종인은 비어있는 자신의 옆에 앉으라는 듯 소파를 툭툭 쳤다.


  "촬영장에서도 본 것 같은데. 누구야?"
  "애인이요."
  "…네?!!"


물은 건 종인이었으나 놀란 건 경수였다. 경수는 입을 벌리고 백현을 쳐다봤다. 지금, 이거… 커밍아웃?! 종인은 요새 이상한 행동의 원인이 백현임을 깨닫고 자신의 팔꿈치를 긁었다.


  "나 스폰서인 거 비밀로 한다더니 이때 막 와도 돼?"
  "둘이 친구래요. 다 안다던데요?"
  "아… 그래? 알았어."


개인적 궁금함이 풀리자 종인은 하품을 하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경수는 아직 어버버거리며 백현을 가리키고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지만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그러나 곧 종인이 다시 나와 굳은 경수의 손목을 잡고 사장실로 데려가자, 경수는 번뜩 정신이 되돌아왔다.


  "안 신기하세요?"
  "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데…"
  "…아."


하긴. 그게 편하겠다. 경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어 종인에게 내밀었다.


  "저번에 촬영 도와주신 거 감사해서요. 되게 놀라셨을 텐데…"


상자 안에는 곰 모양의 열쇠고리가 있었다.


  "키홀더예요. 차 열쇠라든가 집 열쇠라든가… 한번에 달면 편하더라고요…"


종인이 은근 곰과 닮아 고른 것이었지만 경수는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기분 나쁘면 어떡해. 종인의 눈치를 슬쩍 보는 경수의 가방에도 같은 모양의 고리가 덜렁덜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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